개원 4년 차 원장님께 이런 전화가 옵니다. 두 정거장 떨어진 자리에 간판이 하나 올라갔는데, 이름이 우리 병원과 거의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보건소에 물어보면 개설신고는 문제없이 처리됐다고 합니다. 등기소에 물어보면 주소가 다르니 상호 등기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남는 곳은 지식재산처, 예전 이름으로는 특허청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전화를 걸면 대개 늦습니다.

개설신고증에 적힌 이름은 권리가 아닙니다.

병원 이름을 붙들고 있는 서류가 셋입니다. 하는 일은 각각 다릅니다.

의료기관 개설신고는 그 자리에서 진료를 해도 된다는 허락입니다. 의료법 제42조가 명칭 표기 방식을 정해 두고 있을 뿐, 그 이름을 우리만 쓰라고 정해 주는 조항은 없습니다.

상호 등기는 범위가 좁습니다. 상법 제22조는 「타인이 등기한 상호는 동일한 특별시·광역시·시·군에서 동종영업의 상호로 등기하지 못한다」고만 합니다. 같은 시·군 안에서 남이 똑같은 상호를 등기하는 것을 막을 뿐입니다. 옆 시로 넘어가면 걸리지 않습니다.

이름을 전국 단위로 쥐는 권리는 상표권 하나뿐입니다. 상표법 제82조는 상표권이 설정등록으로 발생한다고 못 박아 두었습니다. 등록하지 않았으면 권리는 생기지 않습니다. 몇 년을 썼든 마찬가지입니다.

간판에 이름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는 의료기관 명칭 표기 규정과 간판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쓴 순서와 낸 순서

우리 상표 제도는 먼저 낸 사람에게 권리를 줍니다. 10년을 쓴 이름이라도 어제 출원한 사람이 등록을 받으면 권리는 어제 낸 쪽에 있습니다.

완충 장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상표법 제99조 선사용권입니다. 부정한 목적 없이 남의 출원 전부터 계속 써 왔다면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자기 상호를 상거래 관행에 따라 써 온 경우라면 「수요자에게 알려져 있을 것」이라는 요건도 빠집니다.

다만 이 권리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하던 대로 계속 쓰는 것. 같은 이름을 내건 다른 병원은 막지 못합니다. 분원을 내거나 이름을 다른 분야로 넓히는 일도 이 권리로는 안 됩니다. 상표권자가 「우리와 헷갈리지 않게 표시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이름이 이미 등록돼 있는지부터

확인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지식재산처가 운영하는 KIPRIS에서 상표 검색으로 들어가 병원 이름을 넣어 보면 됩니다. 회원가입 없이도 검색 자체는 열립니다.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진료실 책상에서 키보드로 검색어를 입력하는 모습
병원 이름 한 줄을 넣어 보는 데까지가 첫 단계입니다.

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똑같은 이름이 이미 등록돼 있는지, 그리고 한두 글자만 다른 이름이 걸리는지. 뒤쪽이 더 중요합니다. 심사는 똑같은 상표만 보지 않고 헷갈릴 만한 것까지 봅니다.

결과 화면에 유사군코드라는 칸이 있습니다. 병원 서비스업은 S1205로 시작하는 군에 묶여 있습니다. 충돌 여부는 류 번호보다 이 코드 쪽에서 갈립니다. 다만 KIPRIS 검색 결과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깨끗해 보였다고 등록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44류라는 칸

상표를 낼 때는 이름과 함께 그 이름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적습니다. 국제 분류로 45개 칸이 있고 의료업은 제44류입니다. 류 이름 자체가 「의료업; 수의업; 인간 또는 동물을 위한 위생 및 미용업」으로 시작합니다.

출원서에는 류 번호와 함께 그 안의 세부 명칭을 골라 적습니다. 병원업, 의료업, 치과서비스업, 한의원업, 성형외과업처럼 나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자주 놓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병원 이름으로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내놓을 계획이라면 44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화장품은 3류, 건강기능식품은 5류, 의료기기는 10류로 칸이 다릅니다. 류를 하나 더 지정하면 비용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얼마나 걸릴까?

비용부터 보면 큰 금액은 아닙니다. 전자출원 기준 한 류당 출원료가 52,000원입니다. 고시된 명칭만 골라 쓰면 46,000원으로 내려갑니다. 지정상품이 10개를 넘으면 넘는 개수마다 2,000원씩 붙습니다.

등록결정을 받으면 10년치 설정등록료를 냅니다. 한 류당 201,000원이고 전자문서로 등록증을 받으면 1만 원이 깎입니다. 5년씩 나눠 내는 방법도 있는데 회당 122,000원이라 합계로는 조금 비쌉니다. 존속기간은 10년, 갱신 횟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갱신등록료는 만료 전 1년 안에 신청하면 한 류당 300,000원입니다.

의료진 여럿이 책상에 둘러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한 사람이 펜으로 서명하는 장면
출원서에 무엇을 적어 두느냐에 따라 나중에 지킬 수 있는 범위가 갈립니다.

시간이 문제입니다. 지식재산처가 e-나라지표에 올린 통계로 2025년 상표 1차 심사처리기간은 11.9개월이었습니다(e-나라지표 「심사처리기간」). 출원해서 첫 심사 결과를 받기까지 걸린 평균입니다. 등록까지는 더 걸립니다. 중간에 의견제출통지가 한 번 나오면 몇 달이 더 붙습니다. 출원공고가 나간 뒤에는 30일 동안 누구나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급하면 우선심사가 있습니다. 지정상품 전부를 이미 쓰고 있다면 신청할 수 있고 한 류당 160,000원입니다. 다만 심사 착수가 두 달 안으로 다가온 건은 신청이 각하될 수 있습니다.

개원일에 맞춰 등록까지 끝내려면 1년 전에는 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등록해 둘 실익이 큰 쪽

모든 병원이 상표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명에 진료과목을 붙인 이름은 애초에 등록이 잘 안 됩니다. 누구나 써야 하는 말이라 특정인에게 독점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이름이라면 비용을 쓸 자리가 아닙니다.

값이 달라지는 쪽은 따로 있습니다. 분원을 낼 생각이 있거나 이름을 걸고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홈페이지와 채널에 이름을 걸고 콘텐츠를 몇 년씩 쌓아 가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름에 돈과 시간을 쌓을수록 그 이름을 남이 가져갔을 때 잃는 것도 커집니다.

이름을 짓는 단계에서 함께 볼 것들은 병원 브랜딩의 구성 요소와 시작 시점에 적어 두었습니다.

10분이면 확인됩니다.

KIPRIS를 열고 병원 이름을 검색창에 넣는 데까지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결과가 비어 있으면 아직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이미 등록해 두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금 아는 편이 낫습니다.

확인에는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